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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하택 박사 - 대한민국 문학메카 경북본부 창립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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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32235521_FZGeQo10_eb9ed121e7b2eb92710da43261f06bf16a904e45.JPG대한민국 문학매카 경북본부 창립총회 참석 내빈 기념촬영

아름다운 힐링의 고장 ‘녹색 문경’에서 이루어낸 대한민국 문학메카 경북본부 창립총회'문학부흥' 운동에 앞장서는 대한민국 문학메카 경북본부 회원 일동정필중 편집장 2019-11-09 10:40:39


아름다운 힐링의 고장 ‘녹색 문경’을 대표(代表)하는 문경새재(문경관광호텔 무궁화홀)에서 지난 4일 한국문학(韓國文學)의 한 획을 긋는 뜻 깊은 행사(行事)가 진행(進行)되었다. 다름아닌 ‘사단법인 대한민국 문학메카 경북본부 창립총회’가 바로 그것인데 이날 행사(行事)는 ‘대한민국 문학메카 이사장(理事長)으로 재직(在職) 중인 황하택 박사’의 설립취지(設立趣旨)를 받들어 대한민국 문학메카 경북본부 본부장(本部長)으로 취임한 정의리(鄭義理) 본부장의 문학사랑으로 살아온 삶을 유감(遺憾)없이 발휘한 엄숙하면서 격조(格調)높은 선언(宣言)의 장(場)이었으며 ‘조선시대 선비의 과거급제 길’이라고 일컫는 문경새재를 대한민국 문학메카 경북본부 창립의 장소(場所)로 택(擇)한 것은 상당한 의미(意味)를 함축(含蓄)하고 있다. 

3232235521_EUJu8pdy_e279b463e14c2e4a80f16911d5eb216a42453f77.JPG대한민국 문학매카 경북본부장 임명장 수여 후 기념촬영


이날 행사의 진행 순서는 바이올린 연주(演奏)를 배경으로 ‘KBS 작은세상 큰사랑’에서 사랑의 리퀘스트(Request) 자선(慈善)으로 감동을 연출(演出)했던 김숙자 작가의 ‘숨쉬는 문학’이라는 제목(題目)의 시(지은이 황하택)를 낭송(朗誦)하는 식전행사와 개회선언의 타종(打鐘)과 함께 각계각층에서 축하객(祝賀客)으로 방문한 내외귀빈(內外貴賓)과 경상북도(慶尙北道)를 대표하는 문인(文人)들을 중심으로 성숙(成熟)한 행사가 진행(進行)되었다. 

3232235521_9pJVGarg_7aeb69a3e736d60adf930c9b6d27b47623e3f83e.JPG대한민국 문학매카 경북본부 창립을 축하하는 황하택 이사장


이날 행사(行事)에는 고윤한 문경시장을 비롯하여 전국 각지에서 끝없는 축사(祝辭)와 격려사(激勵辭)가 답지(遝至)하였는데 이 자리에는 대한민국 문학메카 창립(創立)을 위해 최선두(最先頭)에 서서 헌신적 정열(情熱)을 쏟고 있는 황하택 이사장을 비롯하여 국립국어원장을 지내고 도쿄(東京:Tokyo)대학과 칭따오(青岛:Qing dao)대학을 거쳐 경북대학 국어국문학 명예교수로 활동중이며 대한민국 문학메카본부 학술원장을 맡고 있는 이상규 교수, ‘실물경제학 이론’의 저자인 전(前)대구카톨릭대학 총장을 역임(歷任)한 홍철 박사와 한국의사 수필가협회 회장을 역임(歷任)한 전병홍 원장 그리고 경북지역의 AI 개발에 박차(博叉)를 가하고 있는 지역개발협의회 지홍기 의장, 그섬에 가고 싶다.의 저자인 함수남 교수, 광신대학교 김한식 교수그리고 좋은 문학의 김순복 발행인 등이 내빈으로 축사(祝辭)를 전하였다.

3232235521_pQLP9tc4_9384b0c395be6f8713130303de87aaa86f048199.JPG대한민국 문학매카 경북본부장 취임 축하 꽃다발 증정


이날 대한민국 문학메카 경상북도(慶尙北道) 본부장으로 취임(就任)한 정의리 본부장은 제3070지구 지역 로타리클럽 회장(會長)을 역임(歷任)하면서 지역사회에 초아의 봉사활동(奉仕活動)을 펼쳐낸 불굴의 의지를 지닌 인물(人物)로 평가(評價)받고 있다. 현재 문경문학관 상주(常駐) 작가로 창작활동(創作活動)을 펼치고 있는 정의리 본부장은 취임사(就任辭)에서 산자수명(山紫水明)한 자연풍취(自然風趣)를 자랑하는 문경새재를 방문하여 대한민국 문학메카 경북본부 창립을 축하해주는 내외귀빈들께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찬란(燦爛)한 역사(歷史)와 문학(文學)을 계승(繼承)하고 발전(發展)하는데 심혈(心血)을 기울여 지역 문화(文化)와 문학(文學)의 붐이 활발(活潑)하게 조성(造成)되어 나갈 수 있도록 미력(微力)하나마 최선(最善)의 노력(努力)을 경주(傾注)하겠다는 다짐(侤音)을 하였다.

3232235521_nQ2cvLNe_12c3d3e6426daa0b8cfa783dba17152a2e18b01e.JPG대한민국문학매카 경북본부 창립 기념사를 낭독하는 정의리 본부장


축사(祝辭)에 나선 황하택 이사장의 축하(祝賀)의 말을 축약(縮約)하여 살펴보면 “문학(文學)이란 영(靈)적 존재(存在)이며 정치(政治), 경제(經濟), 사회(社會), 그리고 법(法)을 아우르는 것이 곧 문학(文學)이고 삶의 원천(原泉)입니다. 서울의 모 병원 등지에서는 환자(患者)가 입원(入院)을 하면 시집(詩集)이나 수필집(隨筆集)을 읽어보라고 권장(勸獎)을 합니다. 그 이유는 환자(患者)의 치유능력(治癒能力)이 문학(文學)을 통(通)해서 이루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공산주의(共産主義)나 자본주의(資本主義)라는 서로 다른 이념(理念)속에도 문학(文學)은 존재(存在)하며 더 나아가 과거(過去), 현재(現在), 미래(未來)를 통틀어 인간(人間)이 살아 숨쉬는 동안에 문학(文學)은 영원히 존재(存在)한다고 보면 틀림습니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에서 예술(藝術)의 장자(長子)라고 하는 문학(文學)의 위치(位置)를 살펴보면 아쉽기 그지없습니다.

3232235521_Pp9ahIO0_90a1d3923d94aa9f1a5b0eb3b239996ab6e6a918.JPG원근각지에서 대한민국 문학매카 경북본부 창립을 축하하기 위해 문경을 방문한 내빈 기념촬영


그리고 세계 10대 경제대국(經濟大國)이라고 자랑하지만 이에 따른 문학(文學)의 동반발전(同伴發展)은 고사(苦辭)하고 회생(回生)이 곤란할 정도로 위상(位相)이 추락(墜落)하고 있는 현실(現實)은 안타까움을 안겨줍니다. 저는 24년 전부터 대한민국 문학(文學)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苦悶)을 하면서 왜 문학(文學)이 이렇게 시들어가고 있을까(?)라는 의문(疑問)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라도 퇴보(退步)하는 문학(文學)에 대해서 문학인(文學人)들 스스로 반성(反省)하고 ‘문학부흥(文學復興)’을 위해 나서야 된다고 생각을 하면서 지금에 이르렀습니다.(중략)

3232235521_BhLNXwAm_08cbe215ed99e9c3668e7437dfd9d5b4d00923f5.JPG대한민국 문학매카 경북본부 임원에게 임명장 수여 후 기념촬영하는 황하택 이사장


조선시대의 10대 시인(詩人), 모두가 광주.전남 출신이고 가사문학(歌辭文學)의 뿌리가 광주.전남이라고 할 수 있으며 3만 수(數)가 넘는 한시(漢詩)가 존재할 정도로 세계 문학의 역사(歷史)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진기한 기록(記錄)을 보유(保有)하고 있는 곳이 바로 광주.전남입니다. 이처럼 문학(文學)의 볼륨(Volume)이 광주.전남이 가장 크기 때문에 ‘예로부터 경상도는 학문이요. 전라도는 문학’이라는 말이 전래(傳來)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적(歷史的)인 발자취를 근거로 유서(由緖)깊은 광주.전남이 중심(中心)이 돼서 문학(文學)을 일으키자는 취지(趣旨)에서 문학부흥운동(文學復興運動)의 일환(一環)으로 한국문학메카본부 설립(設立)에 나선 것입니다. 

3232235521_q7HcrNLk_2168cbd7c3fb2d80d514c2d2fcbbfa3da4a7078d.JPG대한민국 문학매카 경북본부 창립을 축하하는 황하택 이사장


24년 동안 문학부흥운동(文學復興運動)을 준비하면서 19년 전부터 매년 ‘대한민국문학인교류대회(大韓民國文學人交流大會)’를 실시(實施)하였고 그동안 광주.전남에 약 1만 2천 여명의 문학인(文學人)이 다녀가게 된 것입니다. 금번 제19회를 맞는 대한민국문학인교류대회(大韓民國文學人交流大會)는 금월(11월), 29일과 30일에 걸쳐서 1박 2일의 일정으로 전남 화순금호리조트에서 행사(行事)를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오시는 모든 분들에게 숙식제공(宿食提供)은 물론이고 문학(文學)과 관계된 심포지엄(Symposium)을 포함한 많은 볼거리를 무료(無料)로 대접하고 있으니 아낌없는 성원(聲援)을 부탁합니다. 2018년에 ‘대한민국 문학메카 학술원장’으로 재직(在職)중인 이상규 박사께서 “광주 전남이 문학의 메카(Mecca)이다.”라고 공식(公式)으로 선포(宣布)를 한 후에 인적 네트워크를 결성(結成)하기 위해 전남(全南), 광주(光州)에 이어 대전(大田)과 경북(慶北)을 창립(創立)하였고 부산(釜山)과 경남(慶南)등으로 확대(擴大) 시행을 해나갈 계획(計劃)입니다. 

3232235521_7KxFGOQ1_d887b4a9dfdebbc7abf9faa50eb7d7d13c9200b2.JPG황하택 이사장의 자작시 '숨쉬는 문학' 낭송


이와같이 ‘문학부흥(文學復興)’을 외치는 아름다운 자리에 참석하여 주신 모든 분들은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흠모(欽慕)하는 기념비(記念碑)에 버금갈 수 있는 위대한 문학부흥운동(文學復興運動)에 동참(同參)한 훌륭한 분들입니다. 아무쪼록 아낌없는 성원(聲援)에 다시 한 번 감사(感謝)드립니다.”라는 축원문(祝願文)으로 축사(祝辭)를 갈음하였다. 참고로 정의리(鄭義理) 회장은 경북(慶北) 출신으로 문경새재를 ‘대한민국 문학매카 경북본부’ 창립총회(創立總會) 장소로 선택하게 된 이유(理由)가 남다른데 역사적 배경(背景)으로 문경(聞慶)새재(鳥嶺)를 좀더 상세하게 살펴보면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과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사이에 있는 고개’이며 백두대간 중 소백산맥으로 이어지는 1,017m 높이의 조령산(鳥嶺山)을 경계(經界)하는 곳이고 조령(鳥嶺)의 뜻을 보면 ‘나는 새도 넘기 힘든 고개’란 의미(意味)이다. 지금도 충청북도(忠淸北道)와 경상북도(慶尙北道)의 도계(道界)이기도 하며 고대에는 ‘초점’(草岾)으로 불렸고 지명(地名)을 한글로 옮기면 새재이고 이후 새재를 한자표기로 변경하면서 조령(鳥嶺)으로 적게 된 것이다.

3232235521_SklOd9bp_0484e95f7e98be116ad82f8441e14b9c05de9703.JPG대한민국 문학매카 경북본부 창립총회 국민의례 및 개회선언 현황


예로부터 한강(漢江)과 낙동강(洛東江) 유역을 연결하는 영남대로(嶺南大路)상의 가장 높고 험준한 고개이자 사회(社會), 문화(文化), 경제(經濟)의 유통과 국방(國防)의 요충지(要衝地)였던 문경새재를 바로 알아보지 못한 한 장수(將帥)로 인하여 가슴 아픈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데 파악해보면 임진왜란 당시 삼도도순변사(三道都巡邊使)를 맞게 된 신립(申砬)장군이 천연요새(天然要塞)인 이곳 문경새재에서 방어전선(防禦戰線)을 형성(形成)하자는 부하장수들의 간청(懇請)을 듣지 않고 탄금대(彈琴臺)에서 진(陳)을 치고 왜군에 맞서 기마전술(騎馬戰術)을 펼치다 궤멸(潰滅)당하였고 급기야 조선(朝鮮)은 수도(首都)인 한양(漢陽)을 내어주게 되는 결정적인 비운(悲運)을 맞이하게 된 역사적인 기록(記錄)을 간직하고 있다.

3232235521_Zujmv26R_c1232ef203a06a005b8b973b033264d95260bdc3.JPG대한민국 문학매카 경북본부 창립총회 참석을 환영하는  꽃다발 증정식


이후 조선(朝鮮)을 돕기 위해 참전국으로 파견(派遣)나온 명나라 장군 이여송은 문경새재의 지형(地形)을 보고 "이 험준한 고개를 지킬 생각을 못하다니 신 총병도 참 지략없는 사람이다."하고 신립(申砬)을 비웃었다고 전한다. 임진왜란(壬辰倭亂)이 끝나고 뒤늦게 신립(申砬)이 충주 탄금대(彈琴臺)가 아닌 문경새재에서 결진(結陣)하여 매복(埋伏)하고 전투(戰鬪)를 벌였다면 왜군(倭軍)의 선봉(先鋒將)인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부대를 격퇴(擊退)하고 일망타진(一網打盡)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전략적(戰略的)으로 판단(判斷)하여 이곳에 제1관문 주흘관, 제2관문 조곡관, 제3관문 조령관의 3관문(사적 제 147호)을 설치하여 국방요새(國防要塞)로 삼았다고 한다. 

3232235521_sUzijeJo_90a53fc052562249e6f1bbcd722ab7369af1f933.JPG문경새재를 대표하는 선비의 상


현재 경상북도 도립공원(명승 제 52호)으로 지정되어 있는 문경새재가 문경(聞慶)이란 지명(地名)을 갖게된 것 또한 전설(傳說)이 존재하는데 문경(聞慶)은 지리적으로 상서(祥瑞)로운 곳으로 삼국시대의 신라 초기에 고구려 장수왕의 남진을 막는 국경선(國境線)으로 지정되었으며 문경(聞慶)이라는 지명(地名) 또한 고려 공민왕 시절에 홍건족(紅巾族)의 난(亂)을 피해 봉화 청량산으로 피난(避難)을 갔다가 도읍인 개경(開京)으로 환도(還都)하면서 이 지역을 지날 때 ‘홍건족(紅巾族)이 물러갔다는 경사스런 소식을 들은 곳’이라 하여 ‘문경(聞慶)이라는 지명을 하사(下賜)’받게 되었다고 전(傳)한다. 실제로 한양(漢陽)으로 과거시험(科擧試驗)를 보러가는 경상도의 선비들은 추풍령(秋風嶺)으로 한양(漢陽)을 올라가면 추풍낙엽(秋風落葉)처럼 과거시험(科擧試驗)에 떨어지고 죽령(竹嶺)으로 가면 죽~죽 미끄러진다고 하여 힘들고 멀리 돌아가더라도 ‘과거급제(科擧及第)길’이라고 칭(稱)하면서 문경새재로 통(通)하는 길을 택(擇)하여 한양(漢陽)으로 과거시험(科擧試驗)을 보러다녔고 하니 가을 단풍과 어우러져 극치(極致)의 풍광(風光)을 자랑하는 문경새재야말로 경상문학(慶尙文學) 메카(Mecca)의 장소로 손색(遜色)이 없음을 다시 한 번 새겨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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